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그의 형 존 토머스 언더우드(John Thomas Underwood)가 바로 유명 [[타자기]] 브랜드 언더우드의 설립자이다. H. G. 언더우드가 선교 및 교육 지원 활동을 할 때 이 형이 준 자금이 큰 역할을 했다. 학교부지 20만 평의 구매자금 5만 3천 달러를 보냈으며 추가로 10만 달러를 보내서 현재 [[연세대학교]] 본관으로 쓰이는 언더우드 관을 세우기도 했다. 또한 [[연세대학교 상경대학]]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상과에 많은 타자기를 기증하기도 했다.[* [[https://web.yonsei.ac.kr/underwood/18.pdf|출처]].] 언더우드는 선교 활동에 지극정성을 다했지만, 정작 선교라는 측면은 비슷하던 당시 [[천주교]]에 대해서는 꽤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. 사실 이는 언더우드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[[개신교]], 특히 성공회 선교사들을 제외한[* 성공회-천주교의 관계는 선교초기부터 지금까지 큰 불협화음 없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지되고 있다.] [[영국]]과 [[미국]] 출신 개신교 다수 [[선교사]]들의 공통점이기도 했다. 당시 한국에서 개신교와 천주교의 관계는 매우 불편한 상태였는데[* 한반도만 그런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이라 천주교는 개신교를 열교, 이단이라면서 비난했고, 개신교 역시 가톨릭을 마리아나 숭배하는 종교, 심지어 타락한 적그리스도 집단이라고 비난하기 일쑤였다.] 자세한 이야기는 [[개신교/대한민국]] 문서를 참조. 고종이 호러스 언더우드에게 하사한 [[사인참사검]] 1자루가 [[2016년]] [[10월 11일]] 손자 원득한 박사에 의해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2&oid=005&aid=0000942987|#]] 참고로 이 사인참사검은 [[2017년]] [[6월 18일]] [[TV쇼 진품명품]] 1101회에 나와 3억 원의 감정가를 받았다. 생전 성격이 거침없었다고 한다. 어릴 적 ‘넓은 날개’(wide wings)와 ‘불 동가리’(a bundle of fire)라는 두 개의 별명이 있었다. 언더우드가 [[뉴욕대학교]] 인문학과를 졸업한 인연인지, [[연세대학교]]는 뉴욕대학교와 교환협정을 맺고 매년 [[교환학생]]을 상호 교환하고 있다. [[https://www.nyu.edu/academics/studying-abroad/exchange/internationalexchange/partneruniversities.html|참고]]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